스타트업

나는 사업을 하는거지, 지원사업을 하는게 아니다

예비창업패키지에 떨어졌다. 기대를 안한다고, 마음을 비웠다고 말은 했지만 다가왔던 상실감은 꽤 컸던 것 같다. 붕 떴던 마음이 쿵 가라앉는 그런 느낌.

결론적으론 떨어진 것도 괜찮다. 오히려 “근거를 쌓아서 만들어야하는 사업에 대한 확신을 지원사업이라는 치트키가 아닌, 우리만의 근거를 통해 쌓아 나갈 수 있게 된 계기” 라는 약간의 자기 위로와 “우리는 결과로 보여주면 돼!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떨어진 직후의 감정은 조금 위험했다. 상당히 많은 창업팀이 예비창업패키지 이후, 해체되는 원인도 이런 위험한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글은 초기 창업자라면 누구나 느낄 그 감정선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응 나는 아니야 붙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어보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뿐더러, 예비창업패키지에 붙을 확률은 고작 3.6% 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냥 한번 써보지 뭐.

8월 5일 두번째 MVP 테스트가 끝나고 매출이 67만원 정도 발생했을 때 예비창업패키지 비대면 분야 공고를 확인했다. 5천만원이나 준다는 이 매력적인 녀석은 마감일은 5일밖에 남지 않았던 그 때 “한번 써보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MVP 테스트로 멘토링 신청이 들어온 것들을 진행하고 처리하다보니 이틀정도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큰일났다” 라는 생각도 잠시 준호형이 생각났다. 무작정 도움을 요청한 동생의 요청에 준호형은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고 계신 와중에도 잠깐 시간을 내서 광인회관으로 와주셨다. (사랑합니다 준호 형 진짜..) 정부지원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과 구성, 이미지 배치 등에 대한 팁(이라고 하기엔 훨씬 더 거대한 치트키)을 받고 나는 24시 할리스로 떠났다. 제출 시간이 18시간 정도 남았을 그 때 나는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정신없던 18시간 후 꽤 그럴듯한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냈다. (예비창업패키지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꽤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를 쓰는 방법에 대해서 궁금 할텐데, 이 부분은 따로 정리해서 작성하도록 하겠다.)

사업을 보여주는게 아닌, 사업”계획”서를 쓰다보니 소설가가 된 느낌이었다. 사업가란 남들이 믿지 않는 허무맹랑한 내용을 사실적인 표현으로 실제가 되게 만드는 소설가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이번에 쓴건 계획만을 5페이지에 담아야하는 소설이었다.


5천만원이 눈 앞에 둥둥 떠다녔다.

경쟁률이 13 : 1 이었던 서류에 합격했다. 2배수만 뽑으니 이제 확률은 50%로 상당히 높아졌다. 높아진 확률보다 내 마음 속 기대감이 훨씬 더 높아졌다. 그러나, 월요일 출근 후 발표 자료를 내일까지 제출해달라는 연세대학교 창업지원단의 연락을 받고 또 다시 마음이 급해졌다. 거기에 공동 창업자 형에게 아주 큰 개인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서류 때와 마찬가지로 “큰일났다”라는 생각도 잠시 연고대 창업학회 인사이더스에서 디자인을 맡았던 연우가 생각났다. 급하게 연락해 발표자료의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부탁해 우리는 정말 뚝딱 뚝딱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성공적으로 제출할 수 있었다.

공동창업자 형의 개인적인 일부터 갑작스런 발표자료 제출까지 정말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지만, 내 마음속 기대감은 더 정신없이 커지고 있었다.


눈 앞에서 5천만원을 잃었다.

발표 자료를 제출하고 이틀 후 발표일이 다가왔다. 온라인 발표여서 스크립트도 있고, 질의응답도 준비한대로만 잘하면 무리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심사위원의 마이크를 통해 내 목소리가 2초후에 계속해서 들리는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괜찮았다. 발표까지는 말이다.

질의 응답은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래도 사업을 측정하는 자리여서 사업성이나, 아이템, 팀 혹은 우리가 실제로 진행했던 MVP에 대해서 물어볼 줄 알았다.

“인용하신 논문을 제가 읽어보고 왔는데, 논문에서 측정한 것과 실제로 사용하시려는게 완벽하게 동일하지는 않는데요?”

아뿔싸. 전혀 예상치 못했다. 좀 더 원론적인, 사업을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어떤 답변을 해도 불리한 상황일 것 같아 질문을 흘려서 분위기를 바꾸려 했으나, 심사위원 한 분이 이미 거기에 꽂혀버렸다. 그렇게 7분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났다.

밖에서 기다리던 용섭이 형이 들어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건넸다.

“어땠어..?”

너무 미안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패배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눈 앞에서 5천만원을 잃었다.


환상에 기대었던 2주일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끝났다. 위의 말처럼,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것 뿐이니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꾸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머릿속에 기대감이 아직 넘실거렸다.

녹화했던 온라인 발표를 다시 보니 심사위원의 공격적인 질문에 나름 잘 대처한 것 같았고, “혹시”라는 마음은 점차 커져갔다.

“그거 받으면 너네는 뭐가 달라지는데?”

성현이 형이 물었다.

너무 할 말이 많았다. 제일 먼저 용섭이 형 월급을 주고 싶었다. 2020년 용섭이 형 목표가 창업해서 월급 100만원 받기였다는 사실을 같이 일하기로 한 뒤에 알았고, 그건 2020년에 무조건 이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활비가 부족한 우리가 안정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받아야하는 이유가 100가지도 넘게 생각나는 그 때, 입으로는 “기다려봐야지”라고 했지만 마음 속 기대는 이미 입을 씰룩이며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다. 사업을 하는게 아니라 우연치 않게 찾아온 큰 기회에서 요행을 바란 것이니까.

이것을 깨닫게 해주려고 했나. 2020년 9월 4일. 광인회관의 이사 파티 겸 라이너 투자 축하 파티 날. 즐거워야 할 2시간 전 하늘은 나에게 꾸짖음을 주었다.

“바보야! 그건 사업이 아니야! 요행으로 타협하면 어떻게 해! 떨어져라 이놈!”

그렇게 나는 예비창업패키지에 떨어졌다.


붕 떠버렸던, 그리고 쿵 떨어진 마음

“이건 그냥 한번 써보는 거니까.. 되면 좋은 거고 안되도 우리는 우리 할거 해야지” 였던 마음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왔으니까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로 바뀌었다. 좋은 기회는 어느 순간 “꼭 잡아야 하는 기회”로 변모했고, 마음 속에서는 예비창업 패키지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림을 다 그려놓은 상태였다.

조금씩 둥실 둥실 떠오르던 기대감은 한순간에 추락했고, 절대적으로 바뀐건 없었지만 내 감정은 너무 상대적이었다. 그게 없으면 이제는 할 수 없나 라는 멍청한 생각도 잠시 앞에 있는 용섭이 형을 보니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용섭이 형이 말했다.

“괜찮아. 우리 할 거 하기로 했잖아”

이런. 동화속 왕자님 같은 멘트였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형들의 격려와 위로.

“실패가 디폴트야”

“그거 없다고 사업 못하면 죽어야지”

“어차피 떨어졌어야 했어”

“형도 10개 중에 2개 붙었어 임마”

제각각 위로의 말은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그래서 더 빨리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광인회관 만세.


실패가 남기고 간 자리.

떨어졌다. 명백한 실패였다. 매정하기만 할 줄 알았던 실패라는 녀석은 고맙게도 세가지 교훈을 남겨주었다.

  1. 질의 응답에 관련한 내용은 주변에 물어봐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 당연한 소리지만, 그런 질의 응답까지도 예상해서 준비했어야 한다. 결국 내가 더 준비를 잘했으면 될 일인데, 준비할 때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물어봤으면 더 많은 관점에서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엔 이런 상황들까지 대비해야겠다.
  2. 사업은 지원사업이 아니라는 것. 사업은 사업 그 자체로써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은 생존 게임이니까. 지원 사업은 당이 풍부한 과실일 수 있지만, 이건 잠깐의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생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보다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지.
  3. 마지막으로 교훈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오기, 분노, 미안함, 실망 그 모든 것들이 섞여 만들어진 추진력을 가질 수 있었다. 불광 불급. 진짜 미치도록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단단히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회고해보니 탈락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주인공이 겪는 시련 같기도 하고, 시련을 겪은 주인공은 결국엔 성공한다는 뻔한 클리셰 속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렇다.


Dear 96.4%, 그리고 3.6%

정부 지원 사업의 지원과정부터 탈락까지의 감정선을 전달하고 싶었다. “기대 없어”라는 말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엔 기대로 가득차버린, 그리고 그 기대가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해버렸을 때의 상실감을 말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확률적으로 불합격하는 96.4%가 느낄 감정일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기대를 갖고 하면 정말 위험하다. 정말 사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가 틀렸나, 이거 없이는 내가 사업을 못할 것 같아”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채우는 상실감이라는 녀석을 마주해서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정부 지원 사업이 진짜 창업할 사람을 골라내는 과정 같기도 하다. 어차피 안할 사람은 여기서 대부분 떨어져 나가버리니까 말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합격한 3.6%라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부럽다!”

근데 말이다.

“내가 이길거다.”

다시 사업으로

토링은 요새 다시 바쁘다. MVP를 수정해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 정말 궁금하곘지만, 이번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로 넘겨야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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