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동네 친구가 세상을 바꾼다

1. 근묵자흑

어머니는 항상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그냥 걱정하는 마음에 하시는 잔소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씀에 동의한다. 

이제 나는 사람이 주변 환경(물리적, 사회적)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좀 똑똑한 척 해보자면 미국의 사업가 짐론도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이라고 말했다.

여튼 어울리는 친구의 중요성을 크게 실감하는 요즘, 위대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광인회관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2.1. 한국 IT 공룡들을 만든 동네 친구들

현재 우리나라 IT 양대 공룡으로 꼽히는 네이버와 카카오, 이 기업들의 창업자들은 창업 이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다. 카카오를 만든 김범수와 네이버 이해진은 1986년 서울대에 입학한 동기동창이다. 이들은 커리어 패스도 비슷하다.

각각 서울대 산업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 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나란히 삼성 SDS에 입사했다. 이후 1998년 김범수가 한게임을, 1년 뒤 이해진은 네이버를 창업한다.

둘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2000년, 한게임과 네이버가 하나가 되어 NHN이 되면서 이들은 공동대표를 맡는다. 이 합병으로 네이버는 당시 포탈 검색 시장 1위인 다음을 앞서 국내 1위 포탈이 되었다.

(좌) 카카오의 김범수 (우) 네이버의 이해진

그런데 알고보면 네이버가 꺾은 다음의 창업자 이재웅과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도 동네 친구다. 심지어, 1995년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재웅은 이해진이 1999년 네이버컴을 만들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들은 청담동 진흥 아파트 같은 동의 위아래층에 살았으며, 가족들 간에도 친분이 있어 교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같은 동네 또는 학교에서 만나 서로 돕고, 경쟁하며 대한민국 IT 신화를 썼다는 스토리가 그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신기했다. 이 스토리는 나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기가막힌 우연은 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2.2 중국의 촌동네 패현 친구들, 중국을 통일하다.

초한지의 한나라도 동네 친구들이 만든 나라다.

동네 친구들이 이룬 위대한 업적은 진시황 이후 중국을 통일한 유방과 그의 부하들의 만남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방의 성공 비결은 뛰어난 용인술을 바탕으로 한신 – 장량 – 소하 등의 훌륭한 부하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울 점을 찾아 적용하는 것에 뛰어났으며, 관련하여 “내가 이 사람들보다 못하다” 는 내용의 3불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공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군영에서 계략을 짜내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장량(張良) 보다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달래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로가 끊어지기 않게 하는 일이야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고,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하는 일에서는 내가 한신(韓信) 보다 나을 수 없지. 내가 이 세 사람을 기용했기 때문에 천하를 얻은 것이오”

3불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소하는 유방과 함께 패현에서 자란 동네 친구 사이였다. 유방의 부하가 된 이후에는 군량 수송이 끊기지 않도록 하며 최고의 내정(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일조하였다.

앞서 언급한 소하뿐 아니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 조참, 왕릉, 번쾌, 주발 등의 인물들도 같은 동네 패현 출신이다. 말 그대로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중국을 통일한 것이다. 평민 출신으로 중국을 통일한 첫번째 황제인 유방과 그 부하들이 한 동네 친구들이었다는 것도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2.3 심지어 애플도 동네 친구들이 만든 회사다.

창업 초기의 워즈니악(좌)과 잡스(우)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애플 역시 동네 친구들이 시작한 회사이다. 다음은 애플 창업자들이 함께 일하게 된 배경이다.

  • 잡스는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의 가정에 입양되며 워즈니악의 동네에 살게 되었다.
  • 애플의 코파운더 잡스와 워즈니악은 같은 고등학교(홈스테드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 동네 친구 빌 페르난데즈가 잡스에게 워즈니악을 소개해 주었다. (빌은 애플의 첫 직원이기도 하다.)
  • 1977년, 워즈니악은 HP에 다니며 컴퓨터 동호회(Home Brew Computer Club)에서 활동을 하였고, 잡스도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 이 모임에서 워즈니악에게 잡스가 같이 직접 컴퓨터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내성적이지만 효율적인 기술을 구현하는데 탁월한 워즈니악(해커), 예술적인 감각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되게 만드는 잡스(힙스터&허슬러) 이들은 서로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렇게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이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공통점 덕분이었다. 이들이 함께 일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PC)의 형태는 지금과 많이 달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내가 광인회관에 합류하게 된 이유

위 동네 친구들 이야기는 모두 광인회관의 설립자 진우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혹자는 위 예시가 성공한 이들 중 같은 동네 출신들만 뽑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광인회관에 합류하기 이전 이 얘기를 듣고 가슴이 뛰었고, 진우형이 광인회관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왜냐하면 위대한 기업들의 창업 스토리에서 나타난 같은 동네, 환경으로부터의 시작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일은 좋은 환경(누구와, 어디서 함께하는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광인회관에 참여한 이유도 좋은 주변 환경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나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으로 나를 몰아넣곤 한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면 ‘바디프로필 촬영’ 같은 목표를 만들어 시작한다. 그런 다음, 주변에 꾸준히 알린다. 주변에 알림으로써 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으며, 나에게는 이런 방식이 목표했던 것을 이루었던 방식이었다.

광인회관에서의 추억들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창업학회인 인사이더스에 들어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후, 인사이더스를 통해 알게된 진우형에게 광인회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형 저도 함께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는 데는 오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좋은 환경에 나를 위치하고자 하는 욕구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나는 당시의 선택이 옳았음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광인회관에 들어오게 된 이후, 나를 포함한 광인회관의 멤버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 이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각자의 성장 과정과 우리가 그려갈 미래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포스팅에서 이어나갈 예정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어질 광인회관의 포스팅을 기다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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