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회관

내가 포르쉐 박스터 GTS를 포기하고 얻은 것

광인회관 사진

광인회관

2019년 8월 25일, 스타트업의 창업자인 나와 친구들은 합정역 인근의 주택에 모여서 복숭아를 탄 독주를 마셨다. 우리만의 ‘도원결의’, 그것이 이 독주를 마신 목적이었다. 라이너의 CEO 김진우, 라이너의 COO 우찬민, 슈퍼멤버스의 CEO 오준호, 수호의 CEO 박지수, 컨티뉴의 CEO 김민상이 그 주인공이었다. 도원결의를 마친 뒤 우리의 모임을 ‘광인회’라고 이름 지었고, 같이 사는 집을 ‘광인회관’이라고 이름 지었다. 벌써 일년 전의 일이다. 그로부터 약 3개월 뒤 라이너에 BD로 합류한 정성현, 토링의 CEO 지현준, 토링의 COO 윤용섭 셋이 광인회관에 입주하였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힘들어한 2019년과 2020년, 다행히도 광인회관 멤버들이 창업한 4개의 스타트업들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물론 앞으로는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서로의 발전을 도왔는지 공유하고 싶어서 광인회관 멤버들에게 함께 글을 쓰자고 제안했다. 고맙게도 성현이와 현준이가 함께 그 시작을 해주기로 하였다.

나는 광인회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공유하는 것을 내 첫 글로 작성하기로 했다. 내가 광인회관을 만들 때 처해있던 상황과 같은 상황에 있는 또래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인회관이 ‘광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냥 미친 놈이 만든 정신 나간 공간처럼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광인회관의 시작은 요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움

2019년 6월,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창업하여 벌써 사업을 한지 7년이나 된 때였다. 창업한 뒤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었고 인간으로서의 나는 사업을 키워온 과정에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은 상태여서 더이상 나아갈 수가 없는 상태였다. 자신감에 가득 차있던 나는 없어진지 오래였고 CEO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감 있는 척하는 나만이 남아있던 때였다. 친구들을 만나서 위로라도 받고 싶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일만 하다보니 일과 관련되지 않은 친구는 거의 남지 않아있었다. 정말 매일 답답함만 쌓였었다. 이 쌓인 답답함이 무엇인지 돌이켜보면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참… 지금 글을 쓰면서 돌이켜봐도 정말 외로웠던 시간들이다.

송민호의 ‘겁’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한곳만 죽어라 팠는데 그게 내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웠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때의 내 감정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제품만 만들어온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일했다.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이 어두운 터널이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 계속 일했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공허함과 외로움은 계속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포르쉐 박스터 GTS vs 토키와 장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절박함이 찾아왔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가’니까, 어떻게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해결책이 하나 떠오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엉뚱한 해결책이었다. 포르쉐 박스터 GTS를 사자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열심히 살아온 만큼 행복하지 못한 내 삶에 대한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이 공허함의 원천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21살부터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곳에 가서 SNS하는 시간에 코딩을 한 줄이라도 더 한 나에게, 적어도 20대 슈퍼리치들의 삶 정도는 허락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그리고 차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처음에는 포르쉐 박스터 GTS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라이너 공동 창업자 찬민이에게 “야, 좋은 차, 간지나면 돼. 하나만 추천해줘”하니, “포르쉐 박스터 GTS”라고 했다. 그게 내가 그 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유일한 이유다. 그렇게 딜러를 찾아가 어떤 옵션으로 차를 계약할지 알아보고 돌아왔다. 차가 바로 나올 수는 없고 6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아이폰 즉석 개통처럼 재고가 있으면 바로 몰고 나올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6개월이나 기다리라고하니 좀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나는 무언가를 받거나 먹기 위해 줄서거나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튼,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그 뒤 당일인지 하루 뒤인지는 모르겠는데 곧 ‘토키와 장’이라는 장소에 대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만화가들이 한 집에 모여서 함께 잘되었고, 먼저 성공한 만화가는 후배 만화가를 위해 월세를 미리 지불하고 나오는 신기한 문화를 가진 장소라는 글을 보았다.

문득, 한번에 많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맞다, 이럴 수가 있었지, 선배가 후배를 밀어주고, 후배가 선배를 도와주고, 함께 잘되는 것.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님,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님, 넥슨의 김정주 회장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님,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님 모두 창업 전부터 전산과 86학번으로 연결된 친구였지. 일본에도 무명회라고 라쿠텐의 창업자와 츠타야의 창업자가 오래 전에 만든 모임이 있었지. 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내 젊음이 정말 의미있겠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내는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함께 잘 될 수 있다면, 적어도 삶이 외롭지는 않겠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내 공허함이 해결될 수 있겠다.”

창업가로서의 내 다음 생각은 “나는 어떻게 하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까?”였다. 놀랍게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누구를 어디에 모을 것인가

나는 내가 관심도 없는 좋은 차를 사는 대신 거기에 쓸 자원을 내 스타일의 토키와 장 혹은 전산과 86학번을 만드는 일에 쓰기로 했다. 나는 장소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를 모을 것인지에 집중했다. 떠오르는 사람이 5명 있었다. 라이너 COO 우찬민, 슈퍼멤버스 CEO 오준호, 수호 CEO 박지수, 컨비니언스 정근식, 열정에 기름붓기 CEO 표시형이었다.

단톡방을 만들어서 의향을 물어보니 다행히도 다들 관심이 있다고 하였다. 모두에게 참 고마웠던 것은 대부분 서울에 방이 있고, 사무실이 강남 쪽에 있는데도 나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 없다고 해준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부동산을 섭외해서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명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집이 넓을 뿐 아니라 방도 많아야 했는데, 방이 많은 건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 함께 살 집을 찾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매물은 몇개 없었고 그래도 직접 둘러볼 만 한 곳이 5곳 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직접 둘러보니 그 중 세 곳만이 적절해보였다. 남은 일은 내 스타일의 토키와 장에 거주할 5명의 친구들에게 집을 보여주고, 실제로 거주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모두 창업가이다보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좀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어떻게 모두 모여서 세 곳의 집을 둘러보았다. 한 곳은 방이 적었고, 한 곳은 인테리어가 너무 안되어있었다. 마지막 한 곳은 조금 좁고 시설이 안좋지만 기존에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던 주택이라서 방이 많고 모든 집기가 갖추어져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황에 적절한 곳이었다.

이렇게 집들을 둘러본 뒤에 함께 라이너 사무실 앞의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자기소개 시간과 집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자기소개 시간을 가진 이유는 다들 내 친구였지, 서로가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멤버 확정을 지었는데, 놀랍게도 5명 중 3명(찬민, 준호, 지수)이 바로 함께 살자고 결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민을 해보겠다고 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결국 여러가지 이유로 광인회관에 합류하지는 못하였다.

계약하고자 한 집의 방이 5개였기 때문에 나와 친구 3명에 더해 한 명을 이 모임의 초기 멤버로 추가 영입하고자 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해보았는데 역시 쉽게 멤버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준호가 예전에 알던 게임 만드는 형을 만나보자고 하여 나를 포함한 멤버 4명과 준호가 알던 형이 평양냉면집에서 만나서 가자미식해와 냉면을 먹으며 함께 사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평양냉면은 정말 맛있었고, 가자미식해는 가시가 많아서 먹기 불편했다. 하지만 그 점심은 그 값을 했다. 준호가 알던 게임 만드는 형인 민상이가 광인회관의 마지막 설립자로서 합류하겠다는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형제가 되자

5명의 멤버가 확정이 된 뒤 광인회관의 설립은 일사천리였다. 일단 나는 즉시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던 방 5개짜리 주택의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나머지 4명의 멤버는 집의 구성과 관리 방안을 구상했다. 창업가가 5명이나 모여있다보니 추진력 하나는 정말 남달랐다.

방과 방에 따른 월세의 배분 뿐 아니라 앞으로의 공과금을 고려한 과금 체계가 설계되었고, 우리의 모든 활동 내역을 기록하기 위한 Notion 페이지 역시 구성하였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온 뒤에 내보낸 광고에 나온 카피인 “Here’s to the crazy ones”와 사자성어인 “불광불급”에서 따온 “광인회(The Crazy Ones)”라고 지었다. 그리고 함께 형제가 되자는 의미에서 복숭아를 썰어넣은 독주를 함께 마시며 도원결의를 했다. 이렇게 우리는 광인회관의 멤버로서 형제가 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창업가들 답게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는 광인회관의 공식 명칭을 광인회관이라고 하지 않았다. 광인회관의 공식 명칭은 ‘광인회관 1호점’이었다. 1호점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 2호점, 3호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토키와 장은 하나로 끝났다. 전산과 86학번도 그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 광인회관 1호점을 시작으로 계속 광인회를 키워나가며 형제로서 서로 돕는 문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5명이었던 광인회는 이 철학에 걸맞게 점차 커져가기 시작했다.


너도 형제가 되자

위 사진은 2019년 광인회관 1호점에서 진행한 내 생일 파티 사진이다. 원래는 생일 파티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번개로라도 생일 파티는 해야하지 않냐는 친구 KB인베스트먼트 장유진 심사역의 제안에 따라 생일 파티를 말 그대로 급하게 생일 저녁 6시부터 모으기 시작했었다.

이렇게 모인 생일 파티 멤버로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개는 한 사람을 빼고는 다음에 하겠다. 지금 소개할 한 사람은 사진의 맨 앞에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남자인 정성현이다. 성현이는 정말 우연히 내 생일(11월 21일) 전날에 처음 보게 된 연세대 경영대 학생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사이더스라는 연고대 창업 동아리 학회 멤버이기도 했는데, 인사이더스는 나와 찬민이가 다른 형들과 함께 만든 창업 동아리이기 때문에 얘기를 좀 더 하게 되었었다. 생일 파티를 급하게 열다보니, 생일 전날 만난 성현이가 생각이 나서 “너 생일 파티 올래? 지금이야”라고 물어보게 되었는데, 이 친구도 “네 형, 어디로 가면 되나요?”라고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내 번개 생일 파티에서 친해진 뒤에 종종 만나며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성실하고 속이 깊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는 광인회관의 멤버는 “창업가”라는 규칙이 있었는데, 광인회관 멤버들에게 제안하여 “예비 창업가”까지로 넓히자고 한 뒤 성현이에게 광인회관 합류를 제안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성현이 역시 다른 광인회관 멤버들처럼 그 자리에서 함께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광인회관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게 벌써 9개월 전의 일이다.


일년이 지난 뒤

성현이의 합류를 시작으로 대학생으로서 창업을 각자 준비하던 윤용섭과 지현준이 광인회관에 순서대로 합류하게 되었다. 현준이와 용섭이는 광인회관에서 지내면서 함께 창업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한 뒤 팀을 합치며 ‘토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큰 내적 문제를 해결한 덕인지, 노력하면 성과가 나는 구조를 라이너 팀 내에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찬민이와 새로 합류한 팀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라이너는 회사로서 그리고 서비스로서 1년 사이에 정말 크게 성장했다. 준호와 지수, 그리고 민상이 역시 회사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 스타트업은 일반적으로 BEP(손익분기)를 못 넘기고 투자금이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인회관의 스타트업들은 이 1년 사이에 모두 BEP를 넘겼다. 합해서 100억원이 안되던 기업가치는 한 회사만으로도 n백억원의 기업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이사날

2020년 8월 24일, 많은 일이 있었던 광인회관 1호점이 합정동에서 연남동으로 이사했다. 위 사진은 이사하기 전날 광인회관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그래서 뽁뽁이가 있다.) 시설이 안좋은 주택을 쓰던 광인회관은 엄청 좋은 시설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사용할 정도로 발전했다. 작년 내 삶을 갉아먹던 외로움이라는 큰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토키와 장을 보고 떠올린 생각이 1년만에 여기까지 발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어떤 행복한 일들이 펼쳐질지 정말 기대가 된다.

1년 밖에 되지 않은 광인회관이고, 아직 회사로서 갈 길이 너무 먼 스타트업들이 모여있으며, 성장하며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창업자들이 모인 곳이지만, 실패하더라도 함께 실패하고 성공하더라도 함께 성공하자는 이 모임이 나는 정말 좋고 이 모임의 멤버인 것이 정말 뿌듯하다.

그러고보니, 혹시 작년의 나처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외롭다면, 당신만의 광인회관을 만드시길. 당신만의 형제들을 모으고,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는 모임으로 발전시키길.

3 thoughts on “내가 포르쉐 박스터 GTS를 포기하고 얻은 것

  1. ‘그러고보니, 혹시 작년의 나처럼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외롭다면, 당신만의 광인회관을 만드시길. 당신만의 형제들을 모으고,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는 모임으로 발전시키길.’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가슴에도 불이 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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