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뒤로하고, 군대를 해결하러 떠나며
절대 광인회관 블로그 글 제목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던, “창업을 뒤로하고” 라는 구절. 그 구절을 내가 적고 있노라니 왠지 모를 설렘이 다가온다.
그 다음에 오는 문장이 이 글의 결론이다. 난 군 문제를 해결하러 떠났고, 11월에 군복무를 시작했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이 이야기는, 그 고민과 결정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렸던 내 자신에 대한 회고다.
(아, 내 창업기가 궁금한 사람은 여기로 )
8월 말, 코파운더가 나갔다.
그리고 내게는 꽤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계속하려 했었다. 혼자서 못할 게 무엇인가 생각도 들었고, 코파운더는 또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일종의 관성이었던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OKR을 세우고 다음 스텝을 계획했다.
- 코파운더를 찾자. 어떻게? 동아리? 인맥을 통한 무한 티타임?
- 가설 검증을 계속하자. 어떤걸? 이걸? 저걸?
그러면서 솔직히 무의식중으로 느끼고 있었다. 난 지쳐가고 있었다.
내 약점을 인정하자
1년 반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코파운더 찾기와 PMF 찾기를 반복해왔다. 그러면서 무언가에 쫒기는 느낌이었고, 그 심리에는 병역문제가 꽤나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겨내기 위해서 괜한 자존심을 부리고 있었다. 병역이란 시련에 지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급해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데드라인이 명확하고 또 (법적으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꽤나 압박을 주었다. 그리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코파운더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른) 프로덕트 중 하나는 채워져야 했다. 리스크를 걸 만큼 믿을만한 동료가 있거나, 이미 프로덕트가 궤도에 올라 날아가고 있다면 당연히 병역은 미룰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없이 병역 리스크를 걸고 창업하는 것을 겁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 심리 상태는 조급함으로 이어졌다. 난 급하게 팀을 짜는 경우가 많았고, 급하게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왠지 모를 “빠름”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PMF에 과하게 집착하고 MVP에 너무 매몰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 인생에는 데드라인이 없어도, 군대에는 데드라인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조급한 마음으로 만든 팀과 프로덕트가 잘 될리는 만무했다. 프로덕트들은 당연히 실패했고, 팀조차 공중분해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쳐갔던 것 같다.
단지 코파운더가 나가서 지친 것은 아니었다. 프로덕트가 잘 안풀려서 지친 것도 아니었다. 실패가 두려운 것도 아니었다.
나의 병역문제와 그걸 두려워하는 나 스스로를 외면하는 게 지쳤던 것 같다.
그 상태에서 코파운더 나간 기념 밥을 사달라며 역주형님(전 젤라또 창업자, 현 스프링캠프 심사역)을 만났다.
사실 흔들리고 있는 나에게 채찍질을 기대하고 간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그래도 다시 해보려 한다는 내 말에 역주형은 군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하는 것을 제안하셨다.
그냥 차라리 준비해서 더 멀리 가자고. 그 기간이 절대 쓸모 없이 버려질 것은 아니라고. 어차피 한국에서 살거면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문제고, 그걸 벗어 던지면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의 내 심리 상태를 읽고 그런 조언을 해주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형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광인회관으로 달려갔고, 마음속 부담과 실제 법적 속박을 벗어던지는 것이 내가 더 위대한 것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실제로 글로벌 창업을 하려면 병역 의무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그러면서 스스로의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게 되었다.
(병역)법적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창업하기를 겁내고 있다는 것을, 또 그걸 억지로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했고, 이를 해소하지 않고 창업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내 약점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렇게 군대 문제를 빠르게 해소하기로 결정하고, 다양한 이유로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는 것이 추후 창업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 후로 나는 가능한 한 빠르게 현역 편입 TO를 찾아 취직했다.
어느덧 10월이었다.
과거의 나를 믿자.
그러면서도 막상 근무를 시작하고 나니, 내 마음 속에서 많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냥 무모하게 도전할 걸 그랬나? 내가 덜 미쳐있었나? 차라리 짧은 육군을 다녀오는 건 어땠을까?
회사를 다니는 건 당연히 내 일을 하는 것보다 재미없었고, 계속해서 도전해보고 싶은 기회들이 눈에 잡혔다.
흔들렸다. 분명 결정할 당시의 난 최선의 판단을 했었고, 이미 결정 내린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난 흔들리고 있었다.
한창 심란해 하던 중 광인회관에 가게 되었고, 내 눈을 본 찬민이형은 왜 반짝반짝하던 눈이 동태눈이 되어있냐고 했다.
속을 들킨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군대를 가기로 결정한 것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이미 결정 내린 사항에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뒤로도 계속 형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죄인마냥 부끄러워하고 있던 내게, 민상이형이 그 당시 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 아니냐고 했다. 흔들리던 나 자신이 더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밤이 깊어져 본가로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워, 당시의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었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아, 그래 그런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었지. 맞아, 그 상황에서의 나는 그런 상태였어.
돌아보니 너무나 타당한 까닭이었고, 아주 합당한 결정이었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내린 결정이었는데.
그 어떤 결정이든,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내가 믿는 내가, 그 당시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미 결정 내린 순간 나는, 누가 뭐라하든 전부 bullshit으로 여기고 내 결정을 관철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거나, 최종 결과가 나온 후의 회고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오독 주의.)
돌이켜보면, 흔들릴 당시의 나는 내 결정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곤 했다. 군대를 해결하는 결정과 그냥 무모하게 미루는 옵션을, 산업기능요원이란 결정과 육군이라는 옵션을 계속 비교했다. 그러니 자꾸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동태눈이 되어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다르다. 과거의 결정이 아닌, 그 결정을 내린 나를 바라본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결정까지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난 나를 믿는다.
내 선택을 믿지 말자. 그냥 과거의 나를 믿자.
지고 들어가지 말자
그 다음에는 몇 주 전 일이 떠올렸다. 진우형, 시형이형과 함께 쇼미10을 보던 중이었다. 쿤타와 언오피셜보이의 1대1 대결.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설계된 세트 안에서, 그들은 한 순간도 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진우형은 화면을 가리키면서,
도현아, 너 저거 배워야해. 지고 들어가질 않잖아. 위닝 마인드.
(정확히 어떻게 말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그 말을 들었던 당시에는 막 흔들리던 때라, 사실 무슨 소린지 잘 몰랐었다. 내 선택에 당당해지고, 산업기능요원이라는 큰 전환점을 정면으로 맞이하기로 한 지금은 좀 다르다.
산업기능요원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창업적인 성취는 많이 포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포기하기로 했었던 것들에 대해,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지고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산업기능요원을 할 동안 흔히들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대하곤 한다.
- 스킬적인 성장
- 실제 기업에서 일해보는 경험
- 연봉
하지만 이제는 나는 그것들을 넘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대하려 한다.
- 언젠가 손을 맞잡고 절벽으로 뛰어들 동료
- 스노우볼을 굴릴 작은 성공
- 글로벌 창업을 위한 역량
또한 나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장까지 이루어 보려고 한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고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난 나만의 카르텔을 만들거고, 또 시스템과 세상에 한 방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절대 지고만 있진 않을거다. 나와 같이 카르텔을 만들어 작당모의할 사람은 연락 바란다.
Special thanks to
위에 언급된 형들 이외에도
이 기회에 좋은 팀을 만나봤으면 한다는 균우형과,
글로벌 창업을 하려면 군대를 해결하는게 맞다는 준호형,
언제나 도현아 너가 맞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시형이형,
놓친 기회들을 인정하고 또 다른 기회들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자는 지수형,
그리고 언제나 동고동락하며 기쁨 뿐만 아니라 고민까지 공유하는 플랜핏, 휙 형들까지.
광인회관 형들 덕분에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또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어느덧 2021년이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얼른 2022년에게 환영 인사를 건넬 준비를 하자.
잘읽었습니다 멋지네요